내공
- 작성자 : 신현우목사
- 25-10-28 18:45
내공
토요일 성경공부와 제직들 식사 준비로 분주한 아내를 뒤에서 꼭 포옹하며 속삭였습니다. “내 인생에 들어와서 고맙고, 넓은 마음으로 당신을 품지 못해서 미안했고, 분노와 막말로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뒤돌아서며 억센 경상도 소리로 아내가 하는 말. “지금 머라카노? 당신 죽나?” 나의 말이 임종 전 한마디로 들렸나 봅니다. 저는 갈수록 변하고 있습니다.
막내아들이 고등학교에 있을 때 나의 추태로 큰 상처를 준 적이 있었습니다. 전혀 아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은 추한 꼴을 보였습니다. 아들은 자신을 미워한다고 오해했고, 밖을 뛰쳐나가 버렸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로 마음이 아팠던 나의 모습과 너무 똑같아 미안한 마음에 학교 건물 구석구석 아이를 찾아 나셨습니다. 아빠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영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들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빠의 자격이 없다”라고 한없이 자책하며, 그날 저녁 아이 방에 들어가서 약속했습니다. 아빠도 변하고 싶다. 아빠가 변할게.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될게.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암담한 미래, 알 수 없는 분노, 채워지지 않는 만족, 풀 수 없는 관계들, 나만 쳐지는 듯한 열등감들은 끊임없이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노력을 안 했겠습니까? 실수하면 예배드리면서 울고, 불안하면 금식기도하고, 하루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책을 수십 권을 사서 미친 듯이 읽고, 뭔가 결심해도 며칠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결론은 늘 같은 곳에 다다릅니다. 인생의 주인은 언제나 “나”였습니다. 우리는 착할 때 주님을 만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극단적인 분노의 상태에서 주님을 만나서 철저하게 무너져야 합니다. 가장 추한 모습에서 하나님 앞에 벌거벗겨져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니 “착한 나”는 언제나 가면을 쓰고 주님을 만납니다. 그 가면이 없을 때는 또다시 깊은 동굴 속에 숨어지내곤 하죠. 그리고 스스로 추스르고 정리가 되면 또 가면을 쓰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착각합니다.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조금이라도 관심받고 싶고, 조금이라도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죽지 않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노력하며” 신앙 생활하게 됩니다.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잠시 부는 바람에 휘청거리면 어떻게 순교의 자리까지 나갈 수 있겠습니까? 물론 사람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쩔 수 없음이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면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돌고 도는, 진보 없는 신앙을 하게 됩니다. 멘토 목사님이 떠나시면서 남기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정도 예수님 믿으면, 이정도 내공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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